공포/사건사고

세월호 사건 정리 파일

공포이야기 2020. 11.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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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에 발생한 세월호 침몰 사고(Sinking of MV Sewol)는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이후 세번째로 많은 인명 피해를 낸 사고다 2014년 4월 16일 오전 8시 50분, 청해진해운 '세월호' 선박에는 단원고 학생 325명, 교사 14명을 포함해 476명이 탑승하고 있었다


세월호는 인천항과 제주항을 오가는 여객선이였는데 오전 8시 55분경 전라남도 진도군 조도면 부근 해상에서 '배가 넘어간다'며 제주 해상교통관제센터에 조난 신호를 보냈다

 

세월호 선장


오전 9시30분, 해경이 도착을 했지만 선체에 진입하지 않았고 배를 빠져나온 승객들만 구조를 했었는데 사건 발생 직후 제일 먼저 구출된 사람이 다름아닌 세월호 선장이었다
선장은 배안의 모든 사무와 인원을 책임지는 최고 책임자이다 그런데 세월호 선장은 아무 대처도 않하고 않은채 자기 혼자 살겠다고 급히 배 안에서 도망나온것이다

 

심지어 세월호 선장은 도망나오기전 젖은 돈을 말리기까지 했으며 다급한 상황에서 승객들에게 움직이지 말라며 방송을 했다 세월호 선장의 대처가 있었더라며 수백명이 목숨을 잃는 상황까지 오지 않았을것이다

당시 해양경찰 보다 40분 늦게 도착을 했던 어선과 민간 선박에 의해 탑승객 절반이상이 구조되었다는 것이다 먼저 도착한 해경이 대피 방송만 했어도 인명피해가 이렇게 까지 나지 않았을거라는 거다 세월호 선장 그리고 해경의 부실한 구조 행위로 더 많은 인명피해가 생겼던것으로 보인다

오전 10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는 세월호 탑승객이 477명이 오보를 알렸으며 오전 11시 9분경에는 경기교육청에서 학생들이 전원 구조되었다고 문자 알림을 보냈다
도한 오후 1시 30분에서 4시 30분경에는 탑승객을 몇명 구조를 했다고 오보를 발표를 하는 어이없는 상황이 이어지기까지 했다

다음날인 17일 오후 2시, 박근혜 전 대통령은 세월호 구조에 총력을 기울리지 않고 태평하게 진도체육관을 방문하여 실종자 가족을 위로 하러갔다

 

18일 오후 1시, 세월호가 완전 침몰되었다

세월호 사고 이유

세월호 사고 이유

 

세월호 선박은 18년된 일본 페리 나미노우에 선박이였다 18년간 운영한 페리 나미노우에 선박은 중고 시장 매물에 올라왔고 이 선박을 청해진해운이 매입하여 세월호라는 이름을 지었다

세월호는 불법적인 개조를 하기 시작 하였다 애초 당시 600명이 정원이였는데 300명을 더 태우기 위해 무리하게 배 뒤쪽에 객실을 만들다는 이유로 선수부 우현 사이드 램프도어가 제거 되었다 이로인해 세월호의 무게는 239톤이 증가 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사고 당시 급변침으로 화물이 한 쪽으로 몰렸고 다른 화물을 덮쳐 선체가 감당하지 못하고 침몰 하고 만것이다

 

세월호 인양은 1073일, 3년만인 2017년에 인양이 되었다 그동안 왜 인양은 안했는가?


미수습자 수중 수색이 계속 이루어졌었고 더 이상 미수습자가 발견되지 않자 가족들의 동의를 얻어 수색 중단을 발표했다 그리고 미수습자 가족들은 조속한 인양 작업을 요구했다

 

 

세월호 선장, 해경, 박근혜 정부가 꾸물거리지 않고 구조작업에 빠른 대처를 했더라면 이렇게까지 많은 인명피해가 나지 않았을 것이다 왜 이들은 그 골든타임에 구조에 미흡하게 행동을 하고 시간을 낭비했던 것일까? 

 

2020/11/14 - [공포/사건사고] - 조두순 나영이 사건 정리 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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