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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로 생중계된 지강헌 인질 사건

공포이야기 2022. 6.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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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10월 16일, 서울 올림픽만큼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사건이 있었다 심지어 TV에서 생중계 되던 날이였는데이 사건은 지강헌 인질극 이었다
당시 인질극을 벌인 범인은 총 4명이었다 지강헌 35세, 안광술 22세, 강영일 21세, 한의철 20세 상당히 어린 나이에 범죄자들이었다

이 인질극으로 특공대와 경찰 천여 명이 집을 포위 했고 취재진과 동네 주민들로 골목길은 많은사람들도 가득차 있었다

근데 그 난리통 속에서 그들은 알 수 없는 말을 쏟아 냈다

지강헌: 나는 시인이야 나는 미래를 보고 과거에 책임감을 느끼는 사람이야 과거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는 시인이란 말이야

안광술:너무 불만이 많아 어디 죄수가 판사 검사를 돈으로 살 수가 있는 거야

지강헌:이 사회에서 목숨을 부지하기에는 너무나 살아갈 곳이 없었다

 

이 사건이 벌어지긴 9일전

1988년 10월 8일 죄수 호송 버스가 중부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미결수 스물다섯 명을 태운 호송버스가 있었는데 영등포 교도소에서 대전, 공주 교도소로 이감 중이었다
안성 톨게이트에 도착할 무렵 재소자 한 명이 갑자기 일어나 이렇게 말했다

"교도관님 저 소변 좀 보고 싶습니다"

교도관이 소변통을 건네는 순간에 지금이다 라는 소리와 함께 죄수들은 일제히 일어나 폭동을 일으킨다
결국 호송버스는 죄수들에게 점령이 되었다
죄수들은 교도관의 옷을 입고 교도관들에게 죄수복을 입히고 수갑을 채웠다

25명의 재소자 중 13명은 안전한 감금을 선택하고 호송차에 남았다
나머지 12명은 범죄 내용이 담긴 재소자 신분카드를 찢었다 그 이유는 신분확인을 못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이후 권총 1자루와 실탄 5발을 챙기고 탈출을 했다

범죄자들은 서울로 진입했다 미결수들의 탈주로 전국은 초 비상상태가 되었다

12명중에 2명은 당일에 검거가 되고 3명은 룸싸롱에서 잡혔다
3명의 범죄자들은 취한 상태에서 계산을 할려고 하는데 칼을 내밀고 이렇게 말했다

"우리 탈주범이야"

겁에 질린 주인은 경찰에 신고를 했고 이내 3명은 바로 경찰에게 붙잡혔다

이 세 명이 잡혀감으로서 그 사장은 포상금으로 600만원을 받게 된다 탈주범들의 현상금은 1인당 200만원이었다

남은 탈주범은 7명인데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지명수배를 때리고 검문검색을 전국적으로 했는데 3일째 되는날 경찰서에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탈주범들이 어젯밤 우리집에 묵고 갔어요"

신고한 곳은 안암동의 한 가정집이였는데 새벽 2시경 열려 있는 대문을 통해 들어 온것 이였다
탈주범 7명은 가정집에 침입해 하루 동안 은신 한 뒤 두 패로 나눠 도망갔다

이것이 언론에 알려지고 서울은 발칵 뒤집혀졌다
일반 가정집에 탈주범들이 들어 갔다더라 28시간만에 나왔다더라 서울에서 일제히 다같은 마음으로 반상회를 열었다
그런데 딱 한 군데서만 반상회가 안 열렸다

반장님이 지방에 출장을 가셨다 거기가 행당동인데 하필 탈주범들이 행당동으로 간것이다
안암동에서 28시간을 머문 후 행당동으로 향했다

탈주범들:현금있는거 다 내놔"

현금은 고작 4만원 서민 집에 들어간 것이다

탈주범들이 가정집으로 간 이유는 경찰이나 검찰이 수사를 할 때 범인을 잡기 위해 가는 곳이
기차역, 터미널, 숙박업소, 유흥업소였다 그걸 간파한 탈주범들은 못 찾을만한 가정집을 선택한 것이였다

 

경찰이 상상도 못했던 선택이었다 경찰이 전혀 예상할 수 없었던 인질숙박극이었다
다음은 더 과감해져 어느 대학병원 주차장에서 한 제약회사에 영업사원 A가 차에 탈려는 순간 2명이 딱 붙더니 갑자기 옆구리에 칼을 딱 들이댔다

탈주범들: 우리 탈주범이다

당시 A는 서른다섯이었다 지금은 예순이 훨씬이 넘었지만 아직도 그날 일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A는 트렁크 문을 열고 물건 넣고 있었는데 두세 명이 와서 칼을 딱 갖다 대고서는 "아저씨 집 어디요?" 라고 물어보았다

A:문정동인데 그건 왜 묻나?"

탈주범들:아저씨 집으로 갑시다"

집에가면 가족들이 있었다 마침 그날이 아내와 6살, 4살 두 아이가 처가에 갔다가 돌아오는 날이였다
심지어 서울역에 마중 나가기로 약속한 상황이었다 당시에는 휴대폰이 없던 시절로 연락할 방법이 없었다
그렇게 A는 탈주범들과 협상을 하게 된다

A는 탈주범들과 2박 3일을 약속하고 집으로 향했다

아내는 씩씩거리면서 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왔는데 뉴스에서 보던 탈주범들이 있었다

그러다가 A는 수면제를 생각했다 수면제를 하나 꺼내 가지고 물에 넣어 봤는데 10분이 지나자 으스러졌는데 맛이 아주 쓰는 바람에 포기를 했다

또 한번의 기회가 왔는데 갑자기 지강헌이 오더니 잃어버린 줄 알았던 결혼 반지를 용케 찾았다

지강헌:자 이걸로 돈 좀 어떻게 해봅시다

A는 전당포에 가면은 방법이 있겠다고 생각 했었다
사람들한테 도움을 청하지 있지 않을까 생각 했지만 그럴수 가 없었다

지강헌이 네 살짜리 둘째 아들을 안고 있었다 지강헌은 A의 머리위에 있었다

 

얼마 후 집주인하고 탈주범들은 술을 한잔하게 된다.
이 술 한잔으로 자기 얘기를 하게 되었고 인질범들도 애환을 인질한테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탈주범 맏형인 지강헌(35세)은 리더였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서 초등학교만 졸업했고 꿈은 시인이었다
지강헌이 탈주한 이유는 대한민국의 비리는 파헤치고 죽겠다는 것이였다 연희궁으로 가려다가 경비가 심해서 포기했다 연희궁은 전두환 전 대통령의 집이였다

지강헌의 죄목은 공범 2명과 7차례 현금 승용차 등 556만 원을 강탈로 형량은 7년에 보호감호 10년이다 총 합이 17년으로 감옥에서 살아야 했다

보호감호제도가 원래는 없었는데 전두환 전 대통령 때 만들어졌다

전두환 신군부는 12.12 군사 쿠데타를 일으키고 1980년 5월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를 신설 한다
사회정화를 명분으로 불량배 소탕작전을 벌여 영장도 없이 6만여 명을 검거를 했는데 그 중 4만여 명을 삼청 교육대에 수용을 했다
삼청교육대에 가혹한 훈련으로 54명이 사망 했었다

당시 대한민국 최고의 오지 청송에 보호감호소를 건립했다
상습범죄자를 장기 구금할 수 있는 사회보호법을 제정해 유사 범죄 2회 이상, 형기 합계 3년 이상일 시 보호감호 7년 또는 10년 추가가 된다

당시 자전거 1대 절도 사건이 있었는데 징역 3년 보호감호 10년 총 13년을 받았었다
이중처벌, 과잉처벌로 비판을 받아 2005년에야 폐지 되었다

근데 정작 이걸 만든 전두환 전대통령의 동생 전경환은 더 큰 범죄를 저지르고서도 형량을 감량 받았다

형 전두환이 대통령이 되니 막강한 권력을 갖게 되자 온갖 정치에 개입하고 새마을운동 중앙본부 사무총장을 하면서 횡령한 돈이 76억이었다 그랬는데도 형량은 7년이었는데 심지어 다 살지도 않고 3년 조금 더 살고나서 석방이 되었다

자강헌은 556만 원에 17년, 전경환은 76억 원에 7년이었다

 

유전 무죄, 무전 유죄

이에 지강헌은 말했다

지강헌: 판사가 내린 판결은 정치적 요구에 의해서 내린 잘못된 판결이다 이 사회에서 목숨을 부지하기에는 너무나 살아갈 곳이 없었다

죄 있어도 돈 있으면 무죄! 죄 없어도 돈 없으면 유죄!

유전 무죄, 무전 유죄를 외쳤다

 

여기서 1명은 즉시 검거가 되고 1명은 도주를 했다 나머지 4명은 인파 속으로 도주를 하다가 네 번째 집에 탈주범들이 들이닥치게 된다 네 번째 집은 22살의 여대생과 아버지 B,어머니가 살고 있었다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탈주범들이 들어 왔을때 B는 이렇게 말했다

"밥은 먹었냐?"

그러면서 아내에게 빨리 밥부터 차리라고 말했다 사시나무 떨듯이 가서 고추장찌개를 해주자
탈주범들은 허겁지겁 맛있게 먹었다 이러면서 조금 마음들이 풀렸던 것으로 생각하고 탈주범들에게 B는 이렇게 말했다

"신발 좀 벗어라 그래도 사람 사는 데인데 신발은 벗고 다녀야 하지 않겠느냐"

그랫더니 신발을 다 벗더니 지강헌은 걸레를 주면서 공범들한테 딱으라고 시켰다
이후 탈주범은 여대생에게 농담처럼 이렇게 물었다

탈주범들:아가씨 어떻게 죽는 게 제일 멋있어 보이냐
여대생:무슨 소리에요?
탈주범들:높은 옥상에서 떨어져 죽는 게 멋있어요 총에 맞아 죽는 게 멋있어요?
여대생:그런 이야기 하지마세요 저는 몰라요

어떻게 하면 탈주범들을 순순히 나가게 할 수 있을까 고민을 하더니 성경 구절을 탈주범한테 읽어주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관심이 없던 지강헌이 말을 걸어왔다

지강헌:나를 위해 기도를 해줄 수 있겠냐?
여대생:뭐라고 기도해 드릴까요?
지강헌:내가 마지막 순간에 예수님 마음이 되게 해달라

그렇게 여대생과 지강헌은 무릎을 끓고 같이 기도를 했는데 지강헌은 오열을 했다

그렇게 의미심장한 1박2일을 보내고 마지막 비지스의 홀리데이 노래가 흘러나온다
마지막 집에서 빠져나가지 못했다 이날 새벽에 B는 경찰에 신고를 했다 신고를 받은 테러 특공대, 경찰 천 명은 그 집을 둘러 쌌다

1988년 10월 16일 북가좌동, 지강헌은 경찰이 밀고 들어오면 인질을 해치겠다고 위협을 하고 있을 무렵.
인질범들의 가족들도 온 상황이었다

지강헌 형:강헌아 강헌아 그러지 마라

강씨 어머니:광술아 아줌마 말 좀 들어줘 어떡하니.... 광술아 엄마도 있고 누나도 있잖아 광술아 제발 좀 들어줘

지강헌 일당은 무시무시한 인질범이었지만 담 밖의 모습하고 너무 달랐다
인질에게 총을 겨누면서도 귓속말로는...

"미안하다 정말 이럴 생각이 없다 절대 다치지 않게 할 테니까 조금만 기다려달라"

 

그때 경찰은 지강헌에게 총을 버리고 자수하라고 말하자 점점 더 흥분하기 시작했다

지강헌:차 대기시키란 말야! 승합차를 보내주면 인질 풀어주고 조용한 곳에 가서 우리 운명을 결정을 짓겠다

잠시 후에 대문이 열리고 인질범 중 한 명인 강 씨가 인질을 데리고 나와 차가 준비되어 있는지 확인하러 갔지만 차는 준비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다시 집으로 들어갈려고 하는 그때  지강헌은 총 한발을 발사하고 이렇게 말했다

지강헌:조용히 하고 내 말 들어 OO아 내가 너 살린다 내 의견 받아들여라 알겠지? 더 이상 이 인질극의 현장에서 벗어나라 넌 나갔으니까 나간 김에 살아라

지강헌은 35살이었고 강 씨는 21살이었기 때문에 아직 어리다고 생각했던것 같았다

잠시 후 집안에 총성 두 발이 울렸다

지강헌:안광술, 한의철 두 명 다 자살했어 마지막 남은 건 나 하나인데...

탈주범 2명은 지강헌의 총을 빼앗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제 체념한 지강헌은 비지스의 홀리데이를 듣고 싶다고 말하자 경찰은 카세트테이프를 동네 인근에서 사서 넣어 주었다

지강헌은 비지스의 홀리데이를 들으면서 자기 머리에 총을 탁 겨눈 상태에서 유리를 집어들고 자살을 시도할려고 하던 순간 경찰특공대원들이 들이 닥쳐서 지강헌한테 총 두 발을 발사 했다

지강헌은 병원에 옮겨졌지만 4시간 후 사망했고 강영일은 경찰에게 붙잡혀 호송차에 끌려갔다

그 다음해인 1989년 5월 북가좌동 인질범 4명 중에 유일한 생존자였던 강 씨는 선고 공판에서 징역 15년 구형을 했는데 선고는 7년을 선고 받았다 형량이 확 줄었다
그 이유는 인질들이 탄원서를 제출 했었다
다섯 집 중에 세 집에서 강 씨를 위해서 탄원서를 냈다

 

탄원서 내용

 

평범하고 단란한 우리 가정에 10월 11일의 새벽은 잊을 수 없습니다 TV와 라디오를 통해 알고 있는 교도소 탈주자들이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모두 겁을 먹었지만 이들의 행동은 시간이 흐를수록 부드러워졌습니다
그러므로 자연스럽게 식사도 커피도 먹고 마시게 되었습니다
전국적으로 국민들을 놀라게 하고 사회적으로 혼란을 가져오게 한 이들 모두는 마땅히 죗값을 치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허나 이들에게서 나쁜 범죄자의 냄새가 아닌 인간다운 눈빛을 읽었고 후회의 마음도 엿볼 수가 있었습니다.

통풍이 안 되는 집안에서 담배 연기와 알 수 없는 답답함으로 이들과 하룻밤을 보내고 다음 날 새벽을 맞이 했습니다

 

아침밥을 먹은 이들은 '잘먹었습니다 아주머니 신세 많이 지고 간다'는 말들을 남겼습니다
맨 나중에 남은 지강헌과 강 씨 두 사람은 우리 식구에게 자기들이 떠나면 곧 신고를 하라고 하였으며 아울러 고맙다는 말을 남기고 발길을 돌렸습니다
이들이 가고 난 후 솔직히 우리 네 식구 모두 울었습니다 무엇 때문에 흐르는 눈물이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정말 죄는 미웠지만 사람은 미워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 탄원서를 읽으시고 다시 한 번의 기회를 주셔서 희망의 빛을 벗삼아 세상의 좋은 등대지기가 되게 하시길 간절히 기원합니다

-인질의 탄원서

 

마지막 탈주범 김길호는 1년 9개월 만인 1990년 7월에 체포 되면서 탈주극은 끝이 났다

 

자료 참고: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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