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사건사고

실미도 실화 사건 그 진실은?

공포이야기 2020. 9.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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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인천 실미도에 위치한 684부대원들이 교관들을 죽이고 부대를 빠져나와 시외버스를 탈취하여 청와대로 향하다가 군부대의 저지로 실패로 돌아가 수류탄으로 자폭한 사건 입니다

 

실제 부대원 사진

실미도 사건


이 사건의 발단은 1968년 1월 21일 북한 공작원 31명이 남으로 넘어와 박정희 대통령을 암살하기위해 침투를 했지만 실패를 한 사건 입니다 이 사건을 김신조 사건으로 불립니다
이에 박정희 대통령은 보복을 위해 4월경 실미도에 684부대를 창설하고 31명으로 구성된 부대원들을 모아 훈련을 시켰습니다 무려 40개월동안 강도 높은 각종 훈련이 진행되었다 이 훈련으로 탈영병도 생겼으며 성폭행 사건도 일어났었다고 합니다

40개월동안 혹독한 훈련을 끝내고 인간병기로 탄생한 부대원들은 오로지 '김일성 목가지를 따온다는' 신념하에 기다렸지만 남북 화해 분위기가 조성이 되었고 중앙정보부장이 바뀌는 바람에 북파 계획은 번복이 되고 맙니다
그러는 와중에 부대 예산 감소로 봉급이 줄어들고 음식, 보급품 등이 부실해지고 교관 및 조교들이 일부분 바뀌면서 부대원들은 점점 불안해져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어느날, 684부대의 보안 유지를 위해 부대원들을 모두 몰살시키자는 얘기가 나돌게 되었고 이 사실을 알게된 부대원들은 '박정희 대통령을 만나 담판을 짓고자' 탈영하기로 마음을 먹게 됩니다

 

실미도 사건


사건 발생 1971년 8월 23일, 교관 및 조교들을 살해한뒤 실미도 섬을 탈출 합니다 당시 김방일 소대장은 출장을 나갔던 상태라 죽음을 면할수 있었다고 합니다
인천에 상륙한 부대원들은 제17보명사단 해안 경계의 저지선을 뚫고선 인천과 수원을 운행하던 인천시내버스((현대 R-192)를 탈취하여 청와대로 향했습니다 하지만 육군과의 총격전에서 버스의 타이어가 터져서 버스가 움직일수 없게 되자
다시 시내버스를 탈튀하여 부평 ~ 영등포를 거쳐 청와대로 향했습니다

 

14시 15분경 서울 영등포구 대방도 유한양행 건물앞에 도착할 무렵 다시 육군과 총격전을 벌였는데 갈수록 684 부대원들이 불리해 지는 상황이 되고 맙니다 포위망을 뚫고갈 가능성이 없어진 부대원들은 수류탄을 꺼내 자폭을 하고 맙니다 그들 중 4명은 살아남았지만 군법재판에서 사형선고를 받아 총살되었다고 합니다

박정희 정부는 이 사건을 '무장공비 사건'이라고 발표를 해 684부대의 진상을 은폐할려고 했습니다

 

실미도 영화

그렇게 이 사건은 30여 년간 묻혀지나 했으나 백동호의 소설 '실미도'를 소재로한 영화 실미도가 개봉되면서 알려지게 됩니다

그리고 영화 실미도와 실제 684부대의 내용과 많이 다르다고 합니다

 

영화 실미도에서는 684부대원들이 사형수,기타 죄수자들도 나오지만 실제로 대부분 민간인 출신이라고 합니다 이들이 684부대에 오게된 이유는 돈을 벌게 해주겠다고 부추겨서 오게되었다는 겁니다


수십년간 묻혀질뻔한 실미도 사건이 밝혀지게 되어서 그 진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684 부대원 그리고 교관 및 조교 이들 모두 시대가 만든 희생양이였던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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